홍도하변의 작은 고채(古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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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8

 

■홍도하변의 작은 고채(古寨)

 

홍도하는 귀주의 중요한 하천입니다. 하천의 총길이는 205킬로메터로서 정안현(正安县)에서 발원하여 미담(湄潭), 봉강(凤冈), 무천(务川), 덕강(德江)을 거쳐 최종적으로 연하현(沿河县) 홍도진(洪渡镇)에서 오강(乌江)으로 합류합니다. 홍도하는 귀주 카르스트 지형구를 통과하기에 매우 물살이 세차며 그 양안은 절벽이 천 길이나 서 있어 장관입니다.

 

 

홍도하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은 무천현에 있는데 비교적 대표적인 관광지가 바로 풍락남목조교(丰乐楠木吊桥)입니다. 풍락진(丰乐镇) 남목촌(楠木村)에 위치한 구름다리는 길이가 166메터이고 높이가 86메터로서 2001년에 건설되었습니다. 남목조교의 한쪽 끝은 절벽에 높이 걸려 있고, 한쪽 끝은 험한 비탈에 고정되어 있으며, 다리위에서면 공중에서 구름을 탄듯 한들거리며 난간에 기대어 멀리 바라보면 하곡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만약 남목조교조교가 홍도하의 아슬아슬하고 장려한 대표적이라면 용담(龙潭)일대는 부드러움의 대표적입니다. 홍도하는 현소재지 부근에 도착한후 점차 물살에서 완만해지면서 현소재지 동쪽으로 몇킬로메터 떨어진 곳에 1200평방메터의 연못을 형성되였는데 현지인들은 "룡담"이라고 불릅니다.

 

 

용담의 양안에는 절벽이 강을 마주하고 우뚝 솟아있는데 기이한 괴석기봉은 마치 크고 작은 자갈과 세멘트모르타르를 주조하여 만든것 같습니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양안의 풍경을 유람할 수 있는데, 정말 "수상석림(水上石林)"과 같다. 그 중 한 곳은 "천주요(天主坳)"로 명명되었는데, 이곳에는 여덟 명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모습을 닮은 돌산이 있는데 하늘기둥이라고 천주(天柱)라 부르며 그리고 거로족 구중천(九重天)의 전설이 얽혀 있어 "구천모석(九天母石)"이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구천모석"의 맞은편에는 바로 무천현의 유명한 고채인 룡담고채(龙潭古寨)가 있는데 이는 거로족촌락입니다. 거로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인구가 55만명에 불과한데 대부분 귀주북부의 무천(务川), 도진(道真), 석천(石阡) 등 현에 분포되여있습니다. 관련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거로족은 고대에 "요인(僚人)"으로 불리웠습니다. 근현대에 이르러 검북지역의 초기 개발로 인해 이곳의 거로족은 기본적으로 "한족화"되어 표면적으로 한족과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거로족은 어디까지나 한 민족으로 그들만의 민족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로족은 주사(朱砂)를 제련하는데 능한 민족으로서 주사는 수은으로서 중원왕조의 도사들이 단을 제련하는 주요재료의 하나입니다. 무천현에서는 이미 2000년 채광 역사를 가진 대굴동 유적(大箐洞遗址)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주전씨(思州田氏) 토사는 일찍이 무천의 주사로 공물을 바쳤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무천 거로족은 2,000명 이상의 수은 제련가가 있었습니다.

 

 

용담고채는 중국에서 유일한 거라오족 보호촌입니다. 이 마을은 전채, 중채, 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마을은 석판골목을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350여 가구의 촌민이 있습니다. 세 면은 산에 의지하고 한 면은 강에 인접해 있어 산과 물을 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을의 오래된 오두막집은 들쑥날쑥하고 고풍스럽습니다. 채내의 돌담, 목문, 기와지붕 등은 거로족의 전통풍격을 보존하였고 용담고채도 주사 채굴로 형성된 마을입니다.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신(申)씨인데 이곳에 역사적 인물인 신우(申佑)가 등장했습니다. 그는 명나라 전기의 인물로 1445년 진사에 급제하여 국자감에 들어갔습니다. 명 영종 전기에는 환관 왕진(王振)이 권력을 장악하고, 권력이 조정과 야당에 기울어 조정의 혼란이 극에 달했습니다. 당시 국자감제주 이시면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왕진의 타격을 받고 연루되어 조정 대신들이 감히 화를 낼 수 없었습니다. 신우(申佑)는 이시면을 구하기 위해 국자감 학생들에게 연명으로 상소할 것을 호소합니다. 결국 명 영종은 이시면 등을 석방하고 신우의 의거도 조신들의 인정을 받아 가정사남부지(嘉靖思南府志)에 "신우는 용감하게 말하고, 강압적인 모욕을 두려워하지 않고, 왕조를 세워 충성스러운 직언을 하고, 여러 가지 이득을 보충합니다. 각 도가 사람을 모아 의논을 하고, 공론하고 제생들에게 경전의 의의를 가르칩니다.”

 

 

1449년 명 영종의 북벌로 토목보의 변을 당해 20만 대군이 전멸했습니다. 명 영종은 와라에 포위되자 탈출하기 위해 신우에게 자신을 가장하게 했습니다. 신우는 편대제가 승여하여 영종의 탈출을 엄호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명군은 참패하고 신우는 살해되고 명 영종도 포로가 됩니다. 1450년, 대종 주기옥은 충렬을 표창하고 신우의 순국을 포상하며 은혜를 베풀어 사남부(思南府, 지금의 사남현)와 무천(务川)에 사당을 세웠습니다. 무천의 신우사는 현청 북쪽의 파라산(波罗山) 기슭에 있습니다.

 

 

용담고채에도 신우사가 건설되였는데 이는 당지의 후예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건설한것입니다. 사당은 삼합원 건물로 가운데는 정전이고 양쪽에는 사랑채가 있습니다. 정전에는 신우의 영패위와 제사를 지내는 향로가 있고, 사랑방에는 신우의 사적과 조정의 포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전 양쪽에는 대련이 "일품인충신효자, 이장사갱전독서(一品人忠臣孝子,二桩事耕田读书)"라는 말도 현지 신씨족 사람들의 가훈입니다.

 

 

용담고채에 들어서면 홍도하의 카르스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거로족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 특색의 민속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날염공방과 음식공방이 있어 관광객들이 용담주민들의 전통 수공예와 음식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용담고채는 과고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금은 점차 간판이 생겨나고 2010년 용담고채는는 '중국역사문화명촌'이 되었으며 귀주성 내 20개 민족문화 중점보호건설촌 중 하나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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