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동남주 국가급 무형문화재 - 동극(侗戏)
동극(侗戏)은 동족(侗族) 곡예에서 발원되었습니다. 동극의 탄생은 오문채(吴文彩)와 큰 관계가 있는데, 오문채는 현재 귀주성 여평현(黎平县) 모공진(茅贡镇) 랍동촌(腊洞村)사람입니다. 그는 한학(汉学) 학당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어려서부터 한극(汉戏)을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서기 1828년부터 1838년까지 그는 귀주의 여평(黎平), 용강(榕江)과 종강(从江) 일대를 돌아다니며 동족서사가(侗族叙事歌), 비파가(琵琶歌)와 동족민간설창(说唱: 곡예)을 기초로 한족의 지방극에 융합되여 창작하였습니다. 2006년 5월, 여평현이 신고한 “동극”은 국무원의 비준을 거쳐 제1차 국가급 무형문화유산대표항목명부에 올랐습니다. 음력 6월 초엿새는 모공향진(茅贡乡镇) 지문촌(地扪村)에서 일년에 한번씩 동극이 합동공연되는 날입니다. 행사가 오기전에 국가급 동극전승자 오승장(吴胜章) 극사는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동극의 조상 오문채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연극사 오승장은 제자들에게 "오문채는 동극의 시조이다. 우리가 오문채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시조가 우리 동극 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승장극사는 지구촌동극의 극작가와 감독으로서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승을 모시고 기예를 배웁니다. 그를 인터뷰한 이날 저녁 식사 후 오승장은 새로운 극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극본 집필에 빠져서 늘 밤늦게까지 창작합니다. 이날 오승장은 자기 집 소에게 시냇가에 가서 풀을 먹으라고 했다. 이곳은 시원한 시냇물과 신선한 잡초가 있어 소를 방목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휴식시간에 오승장은 동극극본을 반복적으로 수정했습니다. 농한기에 마을 곳곳에서 동극을 리허설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저녁에 오승장은 제자들과 함께 동극 "화카(化卡)"를 리허설했습니다. 이 동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오승장의 득의양양한 제자들입니다. 동극이 합류하는 시간이 갈수록 가까워짐에 따라 오승장도 갈수록 바삐 돌아치고있습니다. 지손촌의 모든 동극단은 그를 초청하여 지도하게 했습니다. 6월 초엿새 아침 일찍 지문촌의 동극합동공연이 시작되였습니다. 동희"화카(化卡)"는 오프닝 공연의 첫 번째 레퍼토리로서, 이는 스승 오승장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며, 나머지 동극반은 추첨을 통해 공연 순서를 결정합니다. 제자들이 인솔하는 동극반이 무대에 오를 차례가 되자 오승장은 줄곧 백스테이지에서 관람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그의 모두 마음속에 속셈이 다 있었습니다. 비록 동극합동공연은 경기가 아니지만 동극사와 동극반 사이에는 여전히 암암리에 힘겨루기를 하여 스승의 긍정과 관중의 사랑을 받는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가장 큰 격려였습니다. 매년 모내기 시기에 오승장의 제자들은 함께 선생님의 집을 도와 모내기를 합니다. 밭에서 김을 매는데 이는 모내기에 비하면 쉬운 일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종종 모내기를 하면서 일상생활을 이야기하고 동극을 부릅다. 일상생활, 생산노동은 동족 문화예술의 원천입니다. 많은 동극은 바로 동족 가족이 노동생활에서 창조한 것입니다. 과거에 한 동족 마을에는 보통 하나 또는 두세 개의 동족 극단이 있었는데, 민족성씨와 고루를 단위로 하여 촌민들이 자유롭게 조직하였습니다. 동극반은 담당사부 1명, 배우 10여명 또는 20~30명, 악대 3~5명으로 구성되였습니다. 극단의 조직 형식은 고정적이며, 인원은 끊임없이 보충하고 교대합니다. 담당사부는 바로 극사입니다. 극사는 배우도 할 줄 알고 감독도 할 수 있으며 노래와 극작가도 할 수 있습니다. 동극사도 왕왕 가사(歌师)입니다. 오승장은 자신이 창작한 동극극본을 책으로 편찬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동극을 알게 하고 동극에서 동가족의 전통문화를 요해하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동극의 보호와 전승에 관심을 가지게 하려고 했습니다. 일년 사계절, 봄재배, 여름길이, 추수, 겨울소장, 이는 대자연의 리듬이고 농작물의 생장의 리듬이며 동족생활의 리듬이기도 합니다. 해마다 농작물은 한 그루 한 그루 경작하고, 살길은 하루하루 힘들고, 마음속의 동극은 한 그루 한 그루 노래합니다. 동족의 생활은 마치 산속의 강과 같으며 자신의 선율과 리듬을 가지고 있고 이곳의 사람들은 침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동족의 연극을 상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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