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이한 육판수 – 타락고진
봄의 명랑함을 지나, 여름의 번성함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돌아서니 벌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가을이 오니 덥지도 조용하고, 좋은 느낌이 들며 마음이 편안합니다.
  
초가을 만물이 시들기 시작하는데,
타락의 나무 은행잎은 푸른빛에 황금빛이 배어 있어
마치 풀과 등나무의 물감을 엎어 놓고 섞어 놓은 듯이 한없이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니 반쯤 노랗고 반쯤 푸른 은행잎이 주위의 검푸른 빛깔에 비해
옅은 노랗게 물든 나무 한 그루가 한 그루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한데,
작년의 황금물결이 막 기억에서 지워지려고 할 때
또 한번의 황금물결이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은행나무에 대해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것은 대부분 늦가을에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떨어지는 그 황금빛은 온 길을 뒤덮고,
햇빛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 알록달록하고,
땅 위의 노란 빛은 숨길 수 없는 현란한 아름다움을 드리우며,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이어집니다.
밝은 노란색이 일엽지추(一叶知秋)의 쓸쓸함을 교묘하게 가린 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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