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감

석문감

(石门坎)

닭울음소리 3 성의 절벽에는 직통강변으로 된 잔도 하나가 있는데 이것은 길이가 800여 미터이고 총 1385 보 돌계단의”지 (之)”자형 잔도이다. 잔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다. 평평한 돌사다리, 견고한 가드레일, 가드레일이 무성한 토종 작은 전죽이 즐비하고 푸르다. 호형의 절벽 위에 한 줄기 맑은 샘이 벽 꼭대기에서 우르릉 내리면서 마치 하늘을 뚫고 온 것 같다. 하늘에서 흩날리며 구슬을 튀겨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이 비폭포는 우기에 더욱 장관이다.

“서부의 서쪽, 먼 변경”이라 불리는 석문감은 지금도 가난하고 시골의 집은 초가지붕이다.

1905년 버글리라는 영국 선교사가 와서 석문감(石門坎)에 기독교도 가져오고 서양의 사상도 가져왔으며 기독교를 수반하여 함락된 서양식 교육으로 석문감(石門坎)을 문화의 선봉으로 뛰어오르게 하였다. 묘문을 처음 만들었고 중국에서 두가지 언어 교학과 남녀 동학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중국 서남지역의 첫 수영장과 축구장, 서의병원, 서남묘강 (묘강) 최초의 초급중학교를 세웠으며 선후로 수백명의 저명인사들이 이곳에서 지도하였다. 묘족사상 첫 박사연구생을 양성했다 … 그후 고지화(高志华), 이리판(易理凡), 목박리(穆博理), 스충더(石崇德), 사오타이칭(邵泰清), 장지차오(张继乔) 등이 잇달아 이곳에서 선교를 하였다.

석문감에서 가장 볼 만한 것이 가장 외진 수코자이(苏科寨)인데 최초의 옛 성당이 남아 있고 묘족 최초의 박사가 이곳에서 나왔다. 성당은 사실 초라해서 집 밖 흰 벽에 그려진 십자가에서 그 기능을 알아낼 수 밖에 없고 매주 수요일 밤 마을 전체가 묘우(苗雨)로 성경을 읽고 경을 부르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

석문향정부 내 대성당은 고지화가 지은 목회동 (목사 건물)으로 거실, 침실, 주방, 옷감, 목욕탕 등이 들어서고 서구적 특색을 띤 벽난로가 있다.

지금도 석문향정부 산꼭대기에 버거레이 묘와 고지화 묘가 있다. 축구장, 수영장,옛 광화초등학교 터도 보인다.

주소 : 毕节市威宁彝族回族苗族自治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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