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성 역사

귀주 역사

귀주는 고대인류발상지 중 하나로서 인류화석과 고대문화유산이 많은 지역입니다.
기록된 자료에 의하면 중국 남부 구석기시대 고대 인류유적의 대부분이 귀주성 경내에서 발견 되었습니다.
약 24만년전부터 귀주에는 인류가 살았었고 현재 발굴된 석기시대 유적만 80여곳이 있습니다.
그 중 관음동(观音洞) 구석기유적은 ‘관음동문화’로 지정되었고 구석기시대의 기원과 발전에대한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검서현의 관음동에서 발굴된 인류가 사용했던 석기는 장강 남쪽지역의 조기문명 대표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구석기시대 중반 동자인(桐梓人), 중반 수성인(水城人), 후반 흥의인(兴义人) 문화유적 등이 발굴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보정현(普定县)에서 발견된 천동문화(穿洞文化)는 1만6천여년전 인류의 조상이 이 곳에 살았었다는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귀주성의 역사는 500여년밖에 안되지만 문헌이나 자료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귀주의 역사는 훨씬 더 오래 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춘추전국시기(기원전 770 – 기원전 476년) 지금의 귀주성 경내(境内)에 장가(牂牁)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중원과 교류가 있었으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기원전 221년), 귀주는 당시의 파군(巴郡), 촉군(蜀郡), 검중군(黔中郡)과 상군(象郡)에 속해있었습니다.


귀주라는 이름은 송나라(기원 960년 – 1127년)부터 불리게 됩니다.
기원974년, 토착민 우두머리 보귀(普贵)가 지배해 왔던 구주(矩州)를 거느리고 송나라에 귀순하는데 그때 송나라 황제가 보낸 칙서에는 “유이귀주 원재요황 惟尔贵州,远在要荒”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귀주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때당시 구주(矩州)와 귀주(贵州) 중국식 발음이 같았음). 명나라 영낙(永乐)11년(기원1413년)귀주승선포정사(贵州承宣布政史)를 설립하고 정식으로 귀주성이라 불리게 됩니다. 귀주의 약칭 검(黔) 오늘날 귀주의 연하현(沿河县)에서부터 용강현(榕江县) 동쪽, 동인시(铜仁)와 검동남(黔东南) 일부 지역은 전국시기(기원전 475 – 기원전 221년)에 초(楚)나라 검중(黔中)에 속했습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한 뒤 검중군을 설립했고 당나라에 와서는 검중도(黔中道), 검주군(黔州郡), 검주도찰부(黔州都督府)를 설립합니다. 귀주의 역사를 보면 검(黔)자를 빼 놓을 수 없기때문에 지금까지도 귀주의 약칭이 검(黔)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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