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의의 역사

준의의 역사

상고시기부터 준의일대에는 인류가 서식하고 번식하였다. 동재현(桐梓县) 암회동(岩灰洞) 구석기시대(旧石器时代) 인류문화유적지에서 발견된 인류의 치아화석은 과학적인 측정을 거쳐 지금으로부터 20.6~24만년전이라고 한다. 동재현(桐梓县) 마안산신석기시대(马鞍山新石器时代) 인류유적지에서도 대량의 석기골기가 발굴되였고 불을 사용한 유적도 많은데 그 년대는 1만 8,000년전이였다. 적수하류역의 적수시(赤水市)와 습수현(习水县) 경내에서도 선후로 돌도끼, 돌이마, 돌그물 등 고대인류의 도구가 많이 발견되였다.

기원전 8~5세기 전후의 춘추시기는 준의시 산하에는 선후로 짱커(牂柯), 바(巴), 촉(蜀), 자(鳖), 시(鳛) 등 방국(邦国)이 있었다. 전국시대 준의 일대는 “대야랑국(大夜郎国)”에 속한다.

서한원광 5년 (기원전 130년)에 소(犍)를 군(郡)으로 설치하고 군이 자현(鳖县)을 다스리였으며 이는 지금의 준의시 중심도시부근에 있다. 원정(元鼎)6년(전111년)에 야랑지(夜郎地)를 짱커군(牂柯郡)으로 처리하므로 250년 넘게 존재했던 “야랑국(夜郎国)”이란 이름이 사라졌다.

야랑현의 이름은 5대시기에 페지되였고 북송시기에 다시 설치되였으며 선화(宣和) 2년 (1120년)에 다시 페지되였는데 앞뒤로 존페(存废)가480년에 이른다. 이후 중국 역사상 야랑의 군현이란 이름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2 급 행정구인 주 · 군의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당정관(贞观) 13년 (639년), 그는 수대(隋代)의 랑저우(郎州)를 파주(播州)로 칭하고 지금의 검북(黔北)의 많은 지역을 관할했다. 파주(播州)라는 이름은 5대 송나라 명나라 말엽에 걸쳐 962년간 존재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흔히 “파주 (播州)”를 고대의 준의라고 부르는데 익숙하다.

당정관(贞观) 16 (642)에 파주(播州)가 거느린 라몽현()을 준의현(义县)으로 개칭하였다. 이것은 준의라는 명칭의 최초의 출현이다. 준의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사용되여온지는 이미 1364년이다. 현 이름 외에 역사적으로 준의채(), 준의군(义军), 준의군민부(义军民府), 준의부(), 준의전구(义专区), 준의행정공서(行政公署), 준의시() 등의 건제 명칭이 있었다. 파주(播州)는 당나라말기부터 명나라말까지의 725년간 양씨토사(氏土司)에 의해 세습 통치되었다.

북송말기에 이르러 파주(播州) 토작 양문귀()등 헌지귀부() 하였다. 1239년 남송시기 천협4(四路)중 하나인 녹주로(夔州路)에 속해 있었다.

()은 판주(播州)의 위문사(宣慰司)이다. 홍무(洪武) 5 (1372)에 사천성 행성(四川行省)에 속해있다가 15 (1382)에 귀주성 도사(州都司)에 귀속되고 27 (1394)에 다시 사천성 승선포정사사(四川承宣布政使司)에 귀속되였다.

 

명만력() 28 (1600)평파역(平播之役)”이후 토사제도를 없애고 개토귀류(改土)”를 실시하여 이듬해 준의와 평월(平越)군민부를 분파해 사천 (四川),귀주() 두 성에 귀속시켰다. 만력 29 (1601)에 준의군민부를 개치하고 선위사(宣慰司) 서백전댐을(西白田) 고쳤다.

청나라 강희(康熙)시기에 진원(镇远), 편교(偏桥), 청평3위는 각기 진원(镇远), 시병施秉, 청평현县) 종속되였고 흥륭위() 황평주(平州) 종속되였다.옹정(雍正) 5 (1727) 오개(), 동고(), 청랑() 3위를 개혁하고 개태(), 금병(锦屏), 청계() 3 현을 건립하였다.옹정 7 (1729)부터 11 (1733)까지 선후로 팔채(八寨), 단강(丹江), 청강(), 고주(古州), 태공(台拱) 5 () 건립하고 진원镇远), 려평黎平, 도윤匀) 3 관할을 받았다.건륭 36 (1771) 강청 () 건립하고 려평부黎平府 부속되였다.

민국 2(二年) 1913 (),,厅) ()으로 고치고 진원(镇远),시병(施秉), 청계(), 사현(), 공수(), 천주(天柱), 금병(锦屏), 려평(黎平), 하강(下江), 영종(), 용강(榕江), 단강(丹江), 태공(台拱), 검하(), 황평(), 로산(), 팔채(八寨), 마하(麻哈) 18현을 건립하였다.

 

민국 3(三年) 1914년에 귀동도()를 건립하고 진원(镇远), 령진원(领镇远), 공수 26개 현을 세웠다.

청나라 강희년간에 군민 () 이란 두 글자를 취소하여 준의부라 하였다. 오늘날 준의시의 대부분 지역은 이 두 부에 귀속되여있으며 일부 지역은 석전부(石阡府)와 사남부(思南府)에 속한다. 청옹정(雍正) 5 (1727), 준의부는 사천성에서 귀주성에 귀속되여 관할하게 되였다.

민국 초기에 부의 건제를 폐지하였다. 민국 24 (1935), 귀주성에는 11개 행정감찰구가 설치되였고 검북(黔北)부의 10여개 현이 제5 행정감찰구로 되였다.

 

1949 11, 준의가 해방되자 5 행정감찰구역이 준의전구로 개편되였고 후에 준의지구라고 불리였으며 성정부의 파출기구였으며 원래의 준의현소재지를 토대로 준의시를 신설하였다.